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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사라진 동방의 대도시 – 흥망의 역사와 그 의미

by 놀고싶은날 2024.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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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는 인류 역사의 무대 중에서도 오랜 전통과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지역입니다. 이곳에는 한때 강성한 왕조와 문화를 배경으로 수십만, 혹은 수백만에 달하는 인구가 밀집했던 대도시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들 가운데 일부는 전쟁, 기후 변화, 무역로 이동, 내부 혼란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쇠퇴하고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동방의 대도시는 각각의 독특한 문화와 번영을 자랑하며, 동시에 그들이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남깁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들 도시 중 네 곳을 예시로 들어, 그 흥망성쇠의 과정과 현대에 남긴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발해의 상경성 – 해동성국(海東盛國)의 찬란한 수도

  - 배경과 번영

발해(渤海)는 698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건국한 나라로, 10세기 초반까지 존재하며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발해는 스스로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부를 정도로 정치·군사·문화 면에서 강성했고, 당(唐), 신라, 일본 등과도 교류하여 국제 무역과 문화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이 나라의 핵심이자 수도였던 **상경성(上京龍泉府)**은 발해가 번영의 정점을 찍던 시기에 건설된 도시로, 행정과 상업,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상경성은 당시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 구조를 참고해 도시를 설계한 것으로 추정되며, 궁궐·관청 지구, 일반 주민의 주택 지구, 시장 등이 체계적으로 구획되어 있었습니다.

  - 도시의 특징

상경성은 고구려 문화를 이어받으면서도 한족, 돌궐, 거란 등 주변 민족들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예술과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궁전과 사원의 유적에서는 고구려 벽화 전통과 당나라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흔적이 발견됩니다.
또한 상경성은 발해가 동아시아 국제 무역망에 적극 참여한 결과, 여러 지역의 상품과 사람들이 모여드는 국제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발해는 외교와 경제력을 모두 확보하며 한때 동북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 쇠퇴와 현재

그러나 10세기 초, 거란(요)이 발해를 공격하면서 상경성은 파괴되었고, 발해 역시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쇠퇴 후 재건되지 못한 상경성은 이후 오랜 세월 잊혀졌으며, 현재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닝안(寧安) 지역에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20세기 들어 고고학자들의 발굴과 연구가 이루어지며, 발해 상경성의 터에서는 건축물의 기초, 도자기, 금속 공예품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발해의 역사와 문화가 재조명되고 있으며, 동북아시아 역사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카라코룸(Karakorum) – 초원을 지배한 몽골 제국의 첫 수도

  - 배경과 번영

카라코룸은 13세기 초 칭기즈 칸(칭기스 칸)과 그의 후계자들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도로 삼았던 도시입니다. 몽골 초원 한가운데 위치했지만, 유라시아 대륙을 종단하는 초원길(Steppe Route)과 실크로드의 분기점을 연결하는 전략적 위치에 있어 빠르게 번영했습니다.
칭기즈 칸과 우구데이 칸 시대에 몽골 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리며, 유라시아 전역과 국제 무역을 장려했습니다. 덕분에 카라코룸에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사람들이 모여 국제도시로 발전했으며, 궁정 의례와 군사 회의가 열리는 핵심 무대가 되었습니다.

  - 도시의 특징

  • 다양한 종교: 카라코룸에는 불교 사원, 이슬람 사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교회 등이 공존해, 몽골 제국의 관용 정책을 상징했습니다.
  • 유목 세계와 정착 문명: 유목민의 이동성과 전 세계적 교역 네트워크가 만나는 지점으로서, 몽골 제국이 어떻게 유목 문화와 정착 문명을 결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 쇠퇴와 현재

쿠빌라이 칸이 수도를 대도(베이징)로 옮기면서 카라코룸은 점차 정치적 중심지를 잃고, 이후 여러 차례 전란으로 파괴되어 잊혀졌습니다. 현대 몽골의 하르호린(Хархорин) 지역 근처에서 이 도시의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에르덴 조(Эрдэнэзуу) 사원과 같은 일부 건물 흔적이 남아 당시의 장엄했던 도시 모습을 짐작하게 합니다.
오늘날 카라코룸 유적은 몽골 제국의 역사와 세계사에서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역사·문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고창(高昌) – 서역 실크로드의 교역 도시

  - 배경과 번영

**고창국(高昌國)**은 4세기부터 8세기 무렵까지 현재의 중국 신장(新疆) 투르판(吐魯番) 지역에 존재했던 도시국가로, ‘서역(西域)’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절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도시는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했고, 당나라와 친밀한 교류 관계를 맺었으며, 동서 문물이 만나고 섞이는 지점으로 번성했습니다.

  - 도시의 특징

  • 상업·무역의 번영: 고창은 비단, 향신료, 보석, 말 등이 교환되는 국제 무역의 요충지였습니다.
  • 불교 유산: 이 지역에는 수많은 석굴 사원과 탑이 세워졌으며, 고창문자와 불경 등 다양한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이는 중앙아시아와 중국, 인도 문화가 만나 융합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쇠퇴와 현재

8세기 이후, 중국 당나라의 세력 확장과 이슬람 칼리프국(Abbāsid)·위구르 세력의 이동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고창은 정치·군사적으로 큰 압력을 받았습니다. 결국 9세기 경에는 서서히 멸망의 길을 걷고, 도시와 국가는 소멸했습니다.
현재는 **고창 고성(高昌故城)**을 중심으로 유적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탑과 시가지, 석굴 사원 등 건축물이 일부 남아 있어 실크로드의 중계 무역과 종교·문화 교류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앙코르(Angkor) – 동남아시아를 호령한 크메르 제국의 수도

  - 배경과 번영

앙코르는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캄보디아 일대를 지배했던 크메르 제국의 수도이자, 동남아시아 고대 문명의 정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적지입니다. 앙코르 와트(Angkor Wat), 앙코르 톰(Angkor Thom) 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원이 밀집해 있으며, 정교한 건축술과 조각, 종교 의식, 관개 농업의 발전상을 두루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앙코르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거주할 만큼 대규모 도시로 발전했고, 물 관리 시스템과 토목 공학, 예술·종교가 융합된 독자적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 도시의 특징

  • 장대한 건축: 앙코르 와트는 면적, 규모, 건축·미술적 완성도 면에서 동남아시아 최고 수준이며, 힌두교와 불교문화의 융합을 잘 보여줍니다.
  • 물 관리 시스템: 저수지·수로·호수 등으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관개망을 통해 대규모 농업이 가능했으며, 도시의 인구를 부양할 만한 풍요로움을 이룩했습니다.

  - 쇠퇴와 현재

앙코르는 15세기 무렵 아유타야(태국 세력)의 침략, 기후 변화, 수로 시스템의 문제 등으로 인해 수도 기능을 상실하고 폐허로 남았습니다. 밀림 속에 파묻힌 채로 수백 년 동안 잊혀졌다가, 19세기 프랑스 탐험가·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어 세계적인 유산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오늘날 앙코르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크메르인의 자부심과 캄보디아의 관광 산업 중심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도시가 남긴 유산

이상 살펴본 동방의 사라진 대도시들은 한때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했지만, 전란·기후 변동·사회·군사적 요인 등으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발해 상경성, 카라코룸, 고창, 앙코르 등은 각기 다른 환경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흥망을 경험했지만, 그 붕괴 원인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욕망과 기술·정치 체계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이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환경적 기반이 손상되거나 외부 압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도시는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문화적·예술적·역사적 유산은 여전히 현대인들에게 큰 가르침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 역사적 교훈: 아무리 강력한 문명과 도시라 해도 끊임없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문화적 가치: 남은 유적과 유물은 지역의 정체성을 이어주고, 인류 문화유산으로서 전 세계가 공유하는 자산이 됩니다.
  • 미래에 대한 통찰: 현대 사회에서도 기후 위기, 자원 고갈, 정치·군사적 갈등 등이 심화될 경우, 지금의 도시들도 전례 없이 빠른 쇠퇴를 맞이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과거의 사라진 대도시들은 단지 관광 자원이나 옛 이야기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들의 존재는 현재 우리에게 역사를 통해 미래를 가늠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과 문화 보전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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