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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Muhammad) – 이슬람의 창시자이자 예언자

by 놀고싶은날 2025.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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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약 570년~632년)는 이슬람의 창시자이자, 이슬람에서 ‘최후의 예언자(The Last Prophet)’로 공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아라비아 반도 메카(Mecca)에서 태어나, 40세경부터 신(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아 이슬람 교리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해 코란(Qur’ān)이 형성되고, 그의 가르침과 언행(수나·하디스) 또한 공동체의 법과 신앙 생활의 지침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글에서는 무하마드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이슬람 공동체와 문명에 미친 영향을 폭넓게 살펴본다.


아라비아 반도의 배경과 무하마드의 초기 생애

  - 6세기 아라비아 반도의 상황

무하마드가 태어나던 시기, 아라비아 반도는 부족 단위로 분열되어 있었고, 주변 대제국(동로마·페르시아)과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사막과 오아시스를 잇는 카라반 무역이 활발했다. 메카(Mecca)는 카아바(Kaʿbah)라 불리는 신성한 성소가 있어 여러 부족들이 순례 목적으로 방문하는 종교·상업적 중심지로 성장했다. 당시 메카와 주변 지역에서는 다신교(우상을 숭배하는 전통), 유대교, 기독교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며 문화가 섞였다.

  - 무하마드의 출생과 성장

무하마드는 약 570년경(정확한 연도는 논란이 있으나, 전통적으로 570년으로 본다) 쿠라이시(Quraysh) 부족의 하심(Hāshim) 가문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잃고 숙부 아부 탈립(Abū Ṭālib)에게 길러지며, 청년 시절부터 상인으로 활동했다.

  • 정직과 신뢰: 무하마드는 상업 활동 중 정직함과 신용을 강조하여 “알 아민(Al-Amīn, 신뢰받는 자)”으로 불렸다. 이는 훗날 예언자로서의 신분을 수락받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 결혼: 무하마드는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과부였던 카디자(Khadījah)의 고용인이었다가, 나중에 그녀와 결혼해 안정된 가정생활을 누렸다. 카디자는 무하마드에게 정신적·물질적으로 큰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계시와 예언자의 사명

  - 첫 계시(610년 무렵)와 이슬람의 시작

약 610년, 무하마드는 메카 근교 히라(Hirāʾ) 산동굴에서 명상·수행을 하던 중, 천사 지브릴(가브리엘)로부터 알라(Allah)의 말씀을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이는 “읽으라(Iqra)”라는 첫 계시를 시작으로, 약 23년간 불규칙적으로 이어졌으며, 훗날 이 계시들이 모여 코란을 이룬다.
무하마드는 자신의 체험을 카디자 등 가까운 이들과 공유했고, 자신이 알라가 보낸 예언자임을 깨닫는다. 이슬람(“하나님께 순종함”)이란 개념도 이 과정에서 정립되었다.

  - 전파와 박해

무하마드는 처음에는 소수 친족과 친구들에게만 가르침을 전했으나, 점차 메카 전역으로 확산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메카의 기득권층은 다신교적 풍습과 이익 구조(순례객 유치 등)를 지키려 했고, 무하마드가 “유일신 신앙”을 강조하며 기존 우상 숭배를 비판하자 강한 반감을 가졌다.
박해가 심해지면서 무하마드와 초기 신자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한동안는 에티오피아로 일부가 피난하기도 했다.

  - 히즈라(Hijrah) – 메디나로의 이주 (622년)

결국 무하마드와 신자들은 622년 메카에서 약 400km 떨어진 야스리브(Yathrib, 후에 ‘메디나(Madīnah)’로 불림)로 이주한다. 이를 히즈라(Hijrah)라 하며, 이슬람력(Hijri)의 원년(1년)으로 삼는다.
메디나에서 무하마드는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군사 지도자로서 공동체(움마, Ummah)를 건설했다. 이슬람법에 따른 공동체 운영과 유대인·다른 부족과의 조약 등을 진행했으며, 메카와의 충돌도 불가피하게 벌어져 바드르 전투, 우후드 전투 등 여러 교전이 일어났다.


무하마드의 메카 정복과 이슬람 확장

  - 메카 복귀와 카아바 정화(630년)

무하마드는 여러 부족 동맹과 성장한 군사력으로 메카와 협정을 맺거나 전투를 벌인 끝에, 630년에 무력 충돌을 거의 없이 메카를 평화롭게 점령했다. 이후 카아바의 우상을 제거하고, 그곳을 유일신 알라를 위한 성소로 재정비했다. 이는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의 중심 종교로 부상하는 전환점이 된다.

  - 전 아라비아 반도 통합

메카 점령 후 무하마드는 아라비아 각 부족을 이슬람의 깃발 아래 통합해갔다. 많은 부족이 평화 협약이나 선교 활동을 통해 이슬람에 들어오거나, 무력을 통한 굴복을 택하기도 했다. 632년 무하마드가 사망할 때쯤에는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이 이슬람 공동체에 편입되었다.


사망과 유산

  - 무하마드의 최후(632년)

무하마드는 632년, 메디나에서 병으로 사망한다. 그 전 해(631년) ‘고별 순례(Hajj)’를 통해 최종적으로 이슬람 율법과 공동체 조직을 정비하고, 신자들에게 “내가 떠난 뒤에도 코란과 내 전통(수나) 따르라”는 유훈을 남겼다. 그의 죽음 이후 칼리프(정통 후계자) 시대가 열려, 급속도로 이슬람 제국이 확장된다.

  - 무하마드가 남긴 것들

  • 코란(Qur’ān): 무하마드 생전과 사후에 걸쳐 기록·편집된 이슬람의 경전. 그의 계시가 핵심이며, 이슬람의 토대가 된다.
  • 수나(Sunnah)·하디스(Hadīth): 무하마드의 언행과 관습을 기록한 전승. 이슬람법(샤리아)과 신앙·윤리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 움마(Ummah): 부족을 넘어선 단일 신앙 공동체 개념을 정립. 이후 전 세계 무슬림을 하나로 묶는 정체성이 되었다.

무하마드의 가르침과 특징

  - 유일신 사상과 예언자 계승

무하마드는 아브라함(이브라힘), 모세(무사), 예수(이사) 등 구약·신약 예언자들의 전통을 잇는 최후의 예언자로서,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하마드는 알라의 사도”라는 신앙 고백(샤하다)을 핵심으로 가르쳤다.
그는 우상 숭배를 배격하고, 빈부·혈통을 넘어 동일한 신 앞에 평등함을 주창했다.

  - 사회 윤리와 공동체 규범

무하마드는 가난한 이들을 돕고,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며, 상업 사기·폭력·부당 이자·방탕한 음주 등을 금지했다. 초기 이슬람 공동체가 단단히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종교적 의무(살라트-기도, 자카트-희사, 사움-금식, 하즈-순례 등)를 통해 개인의 경건함과 공동체 연대를 동시에 이룬 것이다.

  - 현실 정치와 종교의 결합

무하마드는 단순 영적 지도자를 넘어 정치·사회·군사 지도자로 활약했다. 이는 이슬람이 종교·정치·법이 일체화된 시스템을 갖게 되는 토대가 되었고, 이후 이슬람 제국이 거대 문명권을 형성하게 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무하마드의 영향과 의의

  - 이슬람의 확산과 전 세계 무슬림

무하마드가 제창한 이슬람은 오늘날 전 세계 18~19억 명 이상의 신도를 지닌 주요 종교로 성장했다. 중동·북아프리카·남아시아·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민족·문화권에서 이슬람은 정치, 문화, 일상생활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 종교 간 대화와 갈등

무하마드는 기독교·유대교 전통을 계승하는 '유일신' 신앙을 표방함으로써, 아브라함 계 종교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현대에서는 이슬람이 지구촌 이슈의 중심에 있고, 그 이해를 둘러싸고 갈등이나 편견이 발생하기도 한다. 동시에 종교 간 대화(이슬람-기독교 등)에서는 무하마드와 예수, 모세가 ‘동일신을 전한 예언자 계보’로 연결돼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 무하마드의 인격과 모범

무하마드는 이슬람 신자들에게 “가장 훌륭한 인간상(Insān al-Kāmil)”으로 인식된다. 그의 인간적 측면(화해·인내·박애)과 예언자로서의 영적 권위가 결합되어, 무슬림들은 그를 본받아 살아가려 노력한다.
반면, 비무슬림 세계에서는 역사적 배경, 군사적 업적과 전투, 그가 가졌던 여러 부인(당시 문화권 내)은 논란·오해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슬람 내부에서는 이를 시대적·문화적 맥락으로 이해한다.


이슬람 창시자로서 무하마드의 의미

무하마드는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종교·문명권의 창시자이자 예언자로서,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막의 작은 도시 메카에서 시작해, 아라비아 반도를 통합한 뒤 거대한 문명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가, 사회 개혁자의 면모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남긴 코란과 하디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전개된 무슬림 공동체(움마)는 오늘날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문명·문화·정치·경제를 형성하고 있다. 무하마드가 전한 “유일신 신앙”과 “인간 평등”, “도덕적 공동체”라는 가르침은, 종교를 초월해 역사와 문화 속 다양한 담론을 낳았다.

현대 사회에서 이슬람은 무하마드 시대와는 다른 도전과 변화를 맞이한다. 테크놀로지·세계화·다원주의 속에서 이슬람은 더욱 확장되거나, 혹은 여러 논쟁과 갈등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하마드가 사람들에게 강조한 본질—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 인류애, 정의—는 여전히 많은 무슬림에게 행동의 지침이자 신앙의 핵심이다.

이렇듯 무하마드는 단순히 “한 종교의 창시자”를 넘어, 전 인류사에 기록된 뛰어난 예언자·사상가·지도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삶과 가르침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은, 중동·아시아·유럽 등 전 세계로 뻗은 이슬람 문화의 뿌리를 파악하고, 여러 종교 간 대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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